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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초대

아버지의 선물...

 

 
 유독히 더웠던 2009년 7월의 마지막 날,

 오랜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그 장면처럼

 아침부터 잘 풀려간 일들과 달리

 하늘에 가까우셨던 아버지는

 영영 그렇게 노을속에 물들어가셨다, 잿빛으로...


 허겁지겁한 발걸음을 재촉해도,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아들은

 까맣게 타들어간 심장을 부여잡고,

 제 울음을 다하지 못한다...

 행여나 남겨진 어미와 동생들이 더욱 힘들어질까 안스러워...


 심장마비로 쓰러지시고, 의식을 잃으신 후, 이십이일째였다.

 17시간의 그 힘겹고 어려웠던 심장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신지

 채 반년이 지나지도 않았다...


 이십이일의 그 유리 같은 시간 동안 아버지는 참 많은 것을 선물해 주셨다...

 태어나 당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셨고,

 쑥스러워 잡지 못했던 당신의 손과 발을 맘껏 잡고 만질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이 강을 이루지 않도록,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만큼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멀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있는 여동생이 조카와 함께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하셨고,

 가시는 날에도 남은 가족들이 힙겹지 않도록 짧은 하루를 만들어 주셨다...

 준비라도 하신 냥, 병원을 옮기고 만 하루였다...

 그 시간들 동안 나와 우리 가족이 받은 아버지의 배려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끔 가슴이 먹먹하고, 눈가가 젖어들긴 하지만,

 그저 아버지가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가신 기분이랄까...내 어릴적 우리를 위해

 뜨거운 중동에서 몇 년을 보내셨던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제 당신을 보고, 부르고, 만질 수 없다는 생각이 내 눈을 뜨겁게 만든다...

 이런거구나... 할머니를 먼저 보내드렸을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 혈관을 차오른다...


 당신의 평생에 난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치기어린 반항과 미움으로 한참의 시간을 당신과 갈등했다...

 그리고, 무뚝뚝한 내 성격처럼 당신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신분증을 찾기 위해 동생이 찾아 든 아버지의 지갑을 보기 전까지...

 아버지의 지갑속엔 내가 드린 용돈이 아직 그대로였고, 나와 동생의 명함...

 나를 목놓아 울게 만들었던 가족들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시절에 찍었던 증명사진들이 어머니, 나, 여동생 두명의 순으로

 곱게 들어있었다...버려졌을거라 여겨졌던 것들이 당신께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랬구나,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아버지는 나를 생각하셨고,

 마지막으로 가시는길에 그 큰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버지는 나의 자랑이 아니었지만,

 난 언제나 당신의 자랑이었단다... 어찌 이렇게 못난 아들이 있을까...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그래서 당신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순간에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얘기했으면 좋았을것을...


 8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더 뜨거운 재가 되어, 아버지는 내게 안기셨다...

 아버지가 아닌 내가 당신을 안은 건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께서 계신 곳 가까이 아버지의 자리가 마련되고,

 다행히도 할머니 자리에서 아버지 계신 곳이 보이더라...


 아버지, 더 이상의 고통과 슬픔, 우리들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하시고,

 편히, 하느님이 계신 그 곳에서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아버지의 배려와 남기신 사랑 가득한 흔적들,

 가슴 깊은 곳에 소나무처럼 푸르게 간직하겠습니다...

 한번도 하지 못했지만 꼭 하고 싶은 말,

 아버지 사랑합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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