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lternative_IT

집단 정신과 다양성 창조자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2007/08/31

집단지능
개미의 군집은 지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개미는 무력하지만 개미의 집단은 훨씬 다양하고 그 자체로 지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왕국의 이야기나 사회생물학 같은 책을 보면 분명히 개체와 집단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집단정신이나 집단지능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회적 동물의 집단에서도 개체와 집단은 다른 성격을 보인다. 사람들의 사회도 비슷하다.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조직 자체에 하나의 인격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집단은 뚜렷한 특성을 가진다. 물방울과 바다가 다른 것만큼이나 개체와 조직은 다르다. 세포와 기관은 다르다. 분명히 미약한 개체들이 모이는 것으로 양적인 요소가 아니라 질적인 요소가 달라진다.

개미의 왕국에서는 나뭇잎의 섬유질만을 모아서 로프처럼 만드는 개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리를 만드는 개미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요술을 부린다. 개미집단이 개울을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 수도 있다. 집단은 일종의 다양성을 위한 시험적인 개미들을 선보이고 이중에서 성공적인 하위집단의 개미들이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한다. 집단에서는 상호작용이 일어나 내부의 네트워크에서 개체들의 계급이 생기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집단을 이끄는 하위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집단은 개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자기조직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이런 것은 분명히 있다. 아직 자세히 모를 뿐이다.

인공지능(AI)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마빈 민스키의 Society of Mind 라는 책은 구체적인 내용을 기대하면서 읽으면 실망한다고 한다. 민스키는 바로 그것이 책의 요점이라고 설명한다. 하나의 작은 agent 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지능이라고 볼 수 있는 Mind를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적어놓고 이런 내용들의 총체적인 결과가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능을 만들 수 있는 요인도 많고 종류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힘이 빠지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의 창시자가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의 주장하는 발언이니 무시하기도 힘들다. 사실 인공지능의 교과서는 점차 두꺼워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한 요소들의 합으로 복잡한 일들을 만드는 방법은 점차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기계에게도 가르칠 내용이 많다보면 기계들이 스스로 배우거나 지능을 갖는 편이 더 편할 것이 분명하므로 간단한 것들로부터 복잡한 것을 자기조직적인 방법으로 배우면 더 좋을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은 할 일이 줄어들어서 싫어할지 모르지만 기계가 배우는 편이 더 편리할지도 모른다(Machine Learning 같은 주제들이 그렇다.). 생물들의 집단은 이미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집단 지능의 요소들
집단이 만들어 내는 반응이나 집단의 반응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상업적 가치가 크다. 그리고 문화적 가치가 크다. 조회수가 수백만 건을 넘는 웹페이지나 시청률이 아주 높은 프로그램은 영향력이 크다. 지난번에 설명한 케이스는 일상적인 반복에서 벗어난 상품들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이야기를 적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새로운 것은 그것을 좋아할 사람만 좋아한다. 일종의 하위집단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하위집단의 생각이 집단에 수용되어야만 널리 퍼질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다양성의 창조자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며 하위집단을 형성하기조차 어렵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새로운 문화 아이콘들은 모두 소수의 머리 속에만 있던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케이스이다. 애플의 경우에는 뛰어난 광고 전략과 차별화되고 연속성을 가진 스타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책에 의하면 집단적 조직의 원리는 대략 몇 가지의 간단한 구성 요소로 되어 있다. 자연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저자는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는다. 뻔해 보이는 요소를 이용하여 집단지능이 구성된다고 한다. 개체는 집단 안에서 무력하다. 신경세포들과 생각의 관계와도 같다. 저자가 엔텔레키(entelechy -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며 자기조직화하면 예상치 못했던 특성이 나타나는 것. 이머징이라고도 부른다)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용한 물방울이 바다가 되면 거대한 파도와 해일이 되듯 사람들이 모이면 문화가 되고 다수라는 표면 위에서 개인은 밀려다닌다. 구성원인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집단의 성격이 드러나고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집단에 밀려다닌다.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광기를 이해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비판하면서도 밀려다니고 한편으로는 물방울이 파도를 유지시키는 것처럼 사회를 유지한다.

집단정신(mass mind)은 집단적 학습장치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반영한다. 「집단정신의 진화의」 저자가 주장하는 <집단정신을 만드는 원리>는 크게 다섯 가지다. 저자는 박테리아의 군집부터 사람의 집단까지 이러한 예들을 예시했다. 간단히 말하면 집단이 어떻게 그 자체가 학습장치가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 것인데 신경망(뉴럴 네트워크)의 학습과정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친숙하다. 유전자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래밍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독자들이 계속 보아온 현상들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5
가지의 요소는 동조 집행자, 다양성 생성자, 내부 심판관, 자원 이동자, 집단간 토너먼트이다.

동조 집행자
동조 집행자(conformity enforcer)는 가장 흔한 요소로 구성원들에게 동질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동조 집행자는 구성원들에게 동질성을 부여하고 같은 언어와 사고방식 그리고 협력을 강조한다. 같은 집단끼리 서로 비슷하게 만들고 서로 모방하게 한다. 한 구성원이 흥미를 보이면 다른 구성원도 흥미를 보이고 서로 흉내 내기를 계속한다. 가치 있는 모방이라면 더 오래 지속되는 이유가 될 수 있고 이러한 모방의 연속에서 통일된 신호들이 나타난다. 들개들이 사냥할 때 보이는 사냥의 신호라든가, 집단을 이끄는 통일된 순간 전략 신호들이 나타난다. 한 마리의 들개는 미약하지만 동조된 신호에 맞추어 움직이는 들개는 냉혹한 조직속의 사냥기계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의 신경계에서도 대부분의 신경세포는 연산을 하지 않고 같은 신호를 전달만 한다. 어떤 신호는 같은 기능의 세포들이 많이 모인 신경절에서 무시될 수 없을 만큼 강한 신호로 증폭된다. 왜냐하면 같은 신호들이 수없이 흘러 다니기 때문이다. 다른 신호는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신호의 폭풍 속에서 쉽게 무시된다. 네트워크의 통신규약도 동조된 신호다. 산업계의 실질적 표준 (de facto standard of industry)과 같은 표현은 이미 동조를 획득한 강력한 신호를 강제한다. 프로그래밍의 표준 언어같은 것들도 있다. 일종의 법이다.

동조 집행자가 오랜 기간 동안 작용하면 집단은 다른 집단과 확연하게 달라지며 내부적으로는 더 비슷해진다. 집단적인 획일화라고 볼 수도 있고 또 이러한 경향을 강조하는 동조 집행자는 도처에서 눈에 띈다. 같은 언어와 같은 교육을 받으며 공통적인 매체에 매일 노출되는 사람들은 동조집행을 당하기도 하며, 그 자신 역시 자신도 모르는 동조 집행자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들을 무의식중에 모방하고 서로 비슷해지며 그러면서 교감하는 동조 집행자기 된다. 다른 집단과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하위문화나 마니아들이나 동호회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컴퓨터 세계의 예를 들면 동조신호는 MS의 운영체제나 인텔 프로세서 같은 동조신호가 있다. 컴퓨터 환경의 부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동조집행자는 집단의 기본적 유지를 위해 자신들과 가장 유사한 문화신호를 강요한다. 때로는 동조 경찰로 불리기도 하는 동조집행자는 조직의 신호와 다른 신호를 갖는 개체들을 탄압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직의 지도자 역할을 맡는 집행자들은 조직 내의 무언가 다르게 보이는 개체들을 더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동조 집행자들은 매일 우리의 일상에서 보이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상한 친구들과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거나 눌러버린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려면 동조집행자의 공격에서 효과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위장을 하거나 공격에서 빗나가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아니면 더 공격적이 되어 동조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성 생성자
다양성 생성자는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동조 집행자와는 다른 기능인데 일정 수준에서 둘은 공존한다. 동조가 집단의 안정성을 제공한다면 다양성은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군집에서 집단에 동조하지 않는 무리들은 험난한 탐험 여행을 감수해야 한다. 때로 상황이 바뀌어 기존의 동조 집행자들의 체계가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는 경우 하위집단인 다양성 생성자 집단의 우세가 이루어지고 이들이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만일 동조 집행자만으로 이루어진 획일적인 집단이 있다면 조직은 변화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집단에는 다수의 동조 집행자와 소수지만 여러 종류의 다양성 생성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어려운 시기에는 다양성 생성자가 우세를 점하는 경우가 있다. 조직은 다양성 생성자의 손에 이끌려 변화에 적응하고 이들이 나중에 동조 집행자로 변하기도 한다.

환경이 어려워지거나 적대적으로 변하면 평상시에는 친화적이고 동조적이었던 개체들도 불안정해지면서 획일적이던 문화체계의 원심분리가 시작된다. 대표적인 다양성 생성자의 예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주류도 아니며 불필요하게 보이는 대안적인 항체들을 없애지 않고 먹여 살린다. 이들 중에서 비상시에 대안의 역할을 할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양성 창조자들 역시 조직의 건전성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대안과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다양한 행동결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때로 동조 집행자가 다양성 생성자들을 모두 제거하면 대안이 없어지게 된다. 다양성 창조자들의 대부분은 동조집행자가 제거하지 않아도 스스로 사멸하거나 약해진다. 대부분 동조집행자가 이긴다(다양성 창조자의 답들은 틀리는 경우가 많아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들은 다시 소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이 변화에 추종하지 못하여 불안정해질 때 다양성 생성자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며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온다. 이때는 사람들의 불안감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를 때이기도 하다. 시장이 진부해질 때 킬러 앱스를 만들어내어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도 하도 PC와 하드웨어를 잘 팔릴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가끔씩 훌륭한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열광한다. 다양성 생성자는 자기의 세상을 만날 때까지는 소수이며 성공적으로 답을 낸 다음에는 굳어져서 동조집행자로 변하는 경향도 있다(우리 몸에서 둘은 같은 DNA를 갖고 만들어졌으나 다른 기능을 갖는 세포 또는 조직과 비슷하다.).

IT
업계에서 사람들을 열광에 빠지게 하는 순간은 다양성 생성자가 마치 준비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답이나 환상을 들고 나올 때이다. 사람들은 곧바로 동조한다. 웹을 만들어 나타나거나 브라우저를 들고 나타나기고 했고 서치 엔진을 만들어서 나타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보통 괴짜에 가깝다.

내부 심판관
내부 심판관이라는 시스템은 개체 내부의 생물학적인 장치이다. 지속적으로 생물체의 상태를 파악해서 다른 개체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으면 에너지를 더하고 개체들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면 자체적인 파괴 사이클에 들어간다. 실제로 조직이나 동물들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립된 신경세포의 죽음이라든가 무리에서 배척받은 동물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면역이 저하되고 둔해지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반대로 다른 세포와 연결이 강화되고 중추적인 세포가 된다면 세포의 대사도 왕성해지고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세포로 변한다. 조직의 내부에서 저절로 개체가 왕성해지거나 죽어 없어지면서 새로운 모습의 판짜기가 나타나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주위의 인정과 주목을 받으면 개체는 스스로 많은 힘을 얻게 되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조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너무나 효과적이라서 개체를 순식간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인가”와 같은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면 이상한 사이클이 발동하여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요소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갑자기 활력이 떨어지기도 하며 병이 나기도 한다. 자신감도 잃어버린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때로 사람들이 이런 약해지는 모습을 보았다(필자 역시 약해진 적도 많다.). 사람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아주 많지만 몇 가지의 주제는 사람들에게 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방어에 도움을 준적은 있다. 첫 번째는 시스템 실패(system failure)와 개인의 실패를 구분하라는 조언이었다. 분명히 시스템의 잘못으로 일어난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면 안된다는 내용이다. 운영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애플리케이션 에러처럼 보이는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문제를 “내 잘못이야‘ 하는 식으로 개인적인 실패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시스템의 문제로 돌리면 안되는 것처럼 배워왔다. 문제를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환경에서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랫 동안 지켜보다 보면 원인들이 애매해지며 상황이 나아지는 경우도 분명히 많았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문제의 원인이나 답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failure라고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끌고 가다보면 재판장의 변론처럼 되어버려서 내부 심판관이 쓸데없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심리전으로 상대를 위축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상대방의 기를 꺾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치우는 사람도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놀랍게 효과적이다.).

자원 이동자
자원 이동자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주목을 받고 성공적인 개체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원을 분배하지만 문제 해결에 성공적이지 못한 개체들은 무시를 당하며 자원의 분배를 줄여 이들을 빈털터리로 만든다. 책의 저자는 예수를 인용하여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말로 자원 이동자의 작용 규칙을 설명하면서 “주목은 주목을 낳는다”라는 광고학의 상투적인 문구도 같이 인용했다.

집단간 토너먼트
집단간 토너먼트는 하나의 생물체나 마찬가지인 비슷한 집단들이 생존경쟁이나 경쟁을 벌이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집단이 경쟁에서 지는 경우에는 소멸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창조성을 동원한다. 전시에 집단들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발전들이 튀어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

작은 실험접시 위에서 서로 커져가는 군집의 세균집단은 조만간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저자에 의하면 박테리아의 군집은 이런 원리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전지도인 게놈까지 변화시켜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는 수직도약을 이루어 낸다고 한다. 시행착오에 의한 확률보다 훨씬 높은 전략적 진행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벌들의 군집은 벌들을 자신의 신경계의 이동식 신경세포처럼 사용한다고 한다. 이른바 사회적인 시냅스(신경연결)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우리들 옆에도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집단정신의 5대 요소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도 주변에 보면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예전에 조세프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말한 “미녀와 야수의 속편은 오늘도 5번가에서 신호등을 기다린다.” 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사실 5가지 요소(또는 비슷한 그 무엇들)는 우리들 옆에도 있다. 이상하고 생소한 일들을 참지 못하는 동조집행자는 우리들 옆에도 있다. 필자도 포함되는지도 모른다. 너무 이상한 일들을 보면 납득되지 않는 한 계속 그것을 달갑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필자는 다양성 생성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그렇다. 아마 많이 세뇌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개미들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 역시 집단적 지능은 개인을 무력화시킬 만큼 강력하다. 사람들은 강력한 동조 집행자들의 영향으로 실제로 듣고 보는 일을 왜곡시킬 정도의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현실은 공유된 환각이다’라는 장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동조 집행자에 의해 강하게 지배받으며 통일된 집단의 일부가 되는가에 대해서 적고 있다.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감각마저 통제받는다. 우리 머릿속의 변연계(limbic system)는 다른 사람들과 통신하고 자신감을 얻거나 움츠러든다. 신경계의 신호가 폭발적으로 많아지면 폭풍처럼 되듯이 많은 사람들의 신호는 강력한 신호로 변한다. 문화전략을 쓰는 팀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일을 잘 알고 있다.

얼리어댑터라는 말로 초기의 하위집단 형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집단이라는 것은 민스키가 말한 것처럼 집단 그 자체가 하나의 지능인지도 모른다. 집단은 다시 하위집단들로 나눌 수 있다. 하위집단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비슷한 개체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하위집단의 분위기와 아이디어가 있다. 하위문화의 스타일이 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새나갔지만 다양한 집단들의 문화가 있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문화집단에 빠져든다. 분명히 끌리는 집단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집단을 선호한다. 만약 집단이 커지거나 영향력이 증가하면 문화적인 영향력은 증가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정치적인 연대나 인터넷 포털의 카페나 커뮤니티 같은 것도 하나의 하위문화다.

때로는 하위 문화에서의 교감과 평가가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밀접한 사람들 , 비슷한 사람들과 강력하게 교감하기 때문이다. 신경계의 시냅스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끈끈하게 얽혀있다, 때로는 조직속의 개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은 조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굳이 하위집단을 생물에 비교하다면 <신경절>이나 <조직>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의 통신방법과 가치관은 많이 동조화가 일어난 것이다. 책의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말은 자신과 가장 비슷한 하위문화 집단에 속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대안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읽고 나서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은 문화전략 을 쓰고 강한 상징 신호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홀린다. <기대감>과 <홀린다>는 말은 아주 중요하다. 주위에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러면 하위집단이 형성되고 여기서 형성된 에너지로 다른 것들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초기제품의 광고나 캠페인은 실제로 군사작전과 비슷하다. 사람들의 머릿속을 폭격해 버리는 것이다. 힘이 없는 하위집단이라면 똘똘 뭉쳐서 큰 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랜 기간 떠들어야 한다. 어찌되었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야만 작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공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 이동자가 자원을 이동시켜 번영할 수 있다. 아니면 사라지는 것이다.

일단은 무시보다는 주목을 받는 편이 낫다. 유전자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을 만든 존 홀란드는 그의 저서 「숨겨진 질서」에서 CAS(Comple Adative System)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CAS에서 어떤 일을 하는 행위자(agent)의 첫 번째 기본 요소도 집단화(aggrega tion)이었다. 집단이 갖는 창발성과 적응 능력은 집단을 더욱 높은 수준의 메타 행위자(meta agent)로 작용할 수 있는 요건을 갖게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은 집단화가 성공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링크>역시 네트워크에서 노드의 성장과 선호도에 대해 장황할 만큼 길게 설명했다. 비슷한 다른 주장들도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모든 것이 밀집된 나라에서는 초기의 <신호>나 <상징>이 갖는 중요성이 아주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러한 상징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미디어 바이러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미디어 바이러스>는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미디어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홀리는 문화의 그물에 붙여놓은 사인과 표식이기도 하다. 바이러스가 항체와 세포를 홀리는 것은 표면의 무늬로 홀린다. 내부의 DNA는 내용물과 별개이다.